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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돈내산 리뷰

#3 당신 인생에서 기념비적인 날은?

by 모든리뷰 모리 2021. 10. 27.

내 생에 기념일 2014년 3월 30일

우리가 만난날이라 썼다 지우고 1974년 12월이라 쓴다.  내가 태어난 날이 가장 기념할 날이라 쓰고 싶었다.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다 인생의 기념일이, 그러니까 기억하고 싶은, 기억에 남는 기념일이 이렇게 적나 싶어 서글퍼 지기도 했다.  

2021.11월 내 생애 첫 집에 가는날. 자산가로 가는 첫관문을 열었다! 이런건 됐다. 기념일이라면 뭔가 인생에 가치를 다르게 하는 일이고 싶다.  결국 처음에 적었던 날로 돌아간다.  나의 연인을 처음 만난 날. 더 정확히 하자면 만남을 시작하기로 약속한 날이다. 

첫 만남은 2012~2013년 어느쯤. X 권유로 따라나선 자리에 우연한 만남이었다.  커플 4팀이 모여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고, 포켓볼에 야구에 탁구에 종일 놀았다.  그도 모잘라 X와 나는 끝까지 남아 X작업실에서 밤샘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이야기들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겠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건 사진처럼 찍혀있는 T의 잔상이다. (만나고서야 알게된 기억의 오류였지만) 하얀피부에 여리고 마른 사람, 눌러쓴 모자에 운동으로 땀에 젖은 머리, 눈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모자 벗으면 안되냐는 말에 쑥쓰러워하며 모자를 벗었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여리고 작은 느낌이 남아 있었다.  또 한편의 기억은 나랑 같은 아픔을 가졌다는거였다.  작업실로 가는 언덕길을 X와 나 그리고 T, 셋이 걷고 있었다.  T는 해외생활 경험이 있었고 오랜 애인과 헤어진 이유가 나와 같았다.  같은 장소, 같은 이별 경험으로 힘들고 방황했던 시간을 갖고 있었다.  당시 애인과도 문제가 있어 헤어지는 준비중에 있음을 말하는 X에게 내가 뭐라고 그런 애인이면 당장 헤어지라 훈수를 두었다.

낮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꼬박 하루를 보낸 후 헤어지고 1년쯤 지났을까.  더 많이 지났는지도 모른다.  그 후 나는 X와 헤어졌다.  X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였을까?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려가며 헤어졌음을 알린 모양이다.  T는 그렇게 내가 이별하였음을 알게된 동시에 내 욕을 들었을 것이다.

동변상련이라고 그때 내가 걱정되었단다.  괜찮은걸까? 하고.  다시 우연히 연락이 되었고, 서로 잊은 연락처에도 불구하고 진짜 우연이 속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이 아닌 글로. 글로 친해진 사이다.  차마 말로는 나눌수 없던, 말로 꺼내어 말할수 없던 속내들.  함축적인 글 안에 담긴 뜻을 이해하며 서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음에 기뻐했다.  내가 가진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주는 T에게  고마웠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생기고 고마움이 설렘으로 옮겨갔다.

드디어 만나기로 약속한 첫날 2014년 3월 마지막날

산더미처럼 빌린 책을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3월마다 도서관 정원을 걷는다.  첫 만남의 장소가 어느 식당이나 카페가 아니라 도서관이란게 너무 좋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곳이니까.  그동안 사라진 장소, 변화에도 도서관 그곳은 늘 처음과 같다.  

우리는 도서관 정원에 앉아 서로가 다시 만나게 된 우연에 감사하며 변함없는 정원을 바라본다.  여전히 변함없이 옆에 있는 서로를 바라본다.  사람인이 人인 이유는 서로에게 기대어 서 있을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관계는 특히 연인은 더더욱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성장을 도울수 있는 사람이길 소망했다.

반쪽이 되어서가 아니라 변함없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다.  사랑 덕분에 가시를 세우고 있던 마음이, 차디찬 눈으로 가득하던 마음 서랍에 햇빛이 스며들었다.  날카로웠던 날이 무뎌지고, 눈들을 모아 눈사람이 되어 웃게 만든다.  늘 나를 웃게 만드는,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난 날이다.  어려운 일도 헤쳐나갈 수 있게 만든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만든다.  변하지 않는것도 있다는걸 알게한다.  세상은 독고다이라는 나에게 함께라는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게 한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하기로 약속한 날이 내 인생에 가장 큰 기념일이다.